드라마, 영화에서 뮤직비디오까지, 상상 속 공간을 현실로
배우가 연기하고 가수와 아이돌이 춤을 추고 연기하는 무대를 만드는 송석기 대표. 그는 영화판에서 세트 연출이라는 개념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았을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나 드라마의 무대, 즉 세트를 만들고 그 설계를 감리하는 일을 해 왔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작품으로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아카데미상 감독상 수상작인 ‘기생충’을 비롯해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관상’ ‘도둑들’ ‘암살’ ‘1987’ 등이 있다. BTS와 블랙핑크, 빅뱅, 싸이, 트와이스 등의 뮤직비디오 촬영도 그가 대표로 있는 남아(NAMA) 미술센터에서 진행됐다.

WWD 코리아(이하 WWD) 세트 연출은 아직 국내 관객에게는 생소한 분야입니다. 언제부터 그 일을 시작했나요?
송석기 실내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지인 소개로 면접을 보고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술감독을 꿈꾸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디자인을 하고, 그걸 실체화하고, 작품 속에서 나오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죠. 그래서 세트 제작에 더 집중하게 됐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WWD 미술감독과 세트가 하는 일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송석기 미술감독은 감독을 보조해서 시나리오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일을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촬영 장소 선정부터 세트 디자인의 콘셉트를 잡고, 분장이나 의상, 소품 등도 총괄합니다. 이에 비해 세트는 영화 촬영의 무대만을 고민합니다. 미술감독의 콘셉트를 실체화시키는 역할이 세트라고 보면 되실 듯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생각했던 공간은 대부분 현실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미술감독과 계속 소통하면서 상상 속 공간을 현실화시키는 게 세트의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WWD 영화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사극부터 SF까지 담당하는 세트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각 장르별 차이가 있을까요?
송석기 사극에서는 무엇보다 고증이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에 없는 공간을 세트화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래된 시대를 고증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나무를 구해와 덧방(덧붙여 외관을 작업)을 하는 등 많은 공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반면 SF는 오히려 쉽습니다. 누구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콘티에 맞춰 상상력을 창의력을 발휘해 풀어내면 됩니다. 고증은 틀 안에서 디자인을 해야 하니 훨씬 더 공부를 해야 합니다.

WWD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해 왔는데, 사람들은 그 작품에 참여한 것을 잘 모릅니다. 이런 부분이 서운하지는 않나요?
송석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세트 작업을 누가했는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보는 눈도 다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배우가 좋다’ 정도에서 이젠 ‘배우의 연기가 좋다’, ‘영화의 OST가 좋다’, ‘영화의 미장센이 좋다’ 등의 평가들까지 나오고 있죠. 그래서 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있는데 BTS 뮤직비디오 무대를 만들었다고 하니까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하더군요.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당시 아이가 더 크면 보는 눈도 예리해질 테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WWD 할리우드를 보면 대형 세트장을 갖춘 스튜디오가 있어서 세트장에서 영화 한 편을 모두 촬영할 수 있습니다. 한국 세트장 중에는 이렇게 대형 규모가 있나요? 과거에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송석기 할리우드는 아무래도 시장도 크고 투자도 많으니 부러운 현실이죠. 남아미술센터에서도 파주에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튜디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완공되면 더 다양한 실험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세트장은 양수리 종합촬영소 한 곳 외엔 없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부산에도 대형 세트장이 생겼고, 대전에도 전문 세트장이 만들어졌습니다. CJ 등과 같은 기업도 투자를 많이 했죠. 예전에는 빛만 안 들어오는 곳이면 그곳에서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창고에서 촬영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전문적인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세트의 발전으로 영화의 미장센도 좋아졌고, 미술감독 입장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에서 그러한 변화의 시작을 알린 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라고 생각합니다. 세트와 미술에 투자를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이전까지는 예산에 맞춰서 세트장을 만들었고, 그러나보니 배우의 연기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WWD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영화세트장을 잘 보존해 지역사회의 명소로 삼기도 합니다. 참여했던 작품 중에서 보존하고 싶은 세트장이 있을까요?
송석기 아무래도 기생충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택(송강호 분)이 살았던 반지하 공간과 기택이 사는 동네는 모두 고양시 ‘고양아쿠아특수촬영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박사장(이선균 분)의 부잣집은 전주에 있는 오픈세트장에서 집을 만들어 촬영했습니다.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의 세트장은 남겨서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장소를 보존하려면 영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지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지자체의 도움이 필수적이죠.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간 대하사극 작품의 세트장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다만, 세트장 건설은 촬영 기간에 맞춰서 건설해야 하는데, 이를 건축물 수준으로 하려면 시공비 차이가 큽니다. 예산편성이 안되어 세트장 보존이 안 되는 부분은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WWD CG의 기술의 발전과 버추얼 스튜디오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세트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송석기 처음 CG가 등장할 때도 버츄얼 스튜디오가 나올 때에도 이제 세트장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걱정에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세트의 중요성이 더 커지더군요. CG가 할 수 있는 일과 실제 세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죠.
장면 속 더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CG가 해야 하는 영역과 실제 세트가 할 영역이 세분화되면서 오히려 더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습니다.
사실 우리 남아미술센터가 소속된 NSN 컴퍼니에도 버추얼 프로덕션과 미디어테크를 담당하는 ‘네이티브’라는 조직이 있고, ‘네이티브’와 자주 소통하면서 서로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WWD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면서 제작하는 작품 수도 많아졌습니다. 남아미술센터의 일도 늘었을 것 같은데요.
송석기 확실히 촬영이 늘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너무 많은 촬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직도 개봉일시를 정하지 못한 작품도 많습니다. 국내 OTT 경우 사실 투자를 많이 하지는 않는 반면 오히려 넷플릭스는 많은 작품을 찍습니다. 장르물이 많아서 세트가 할 일이 더 많아 졌죠. 그런데 작품 10개를 만들면 그중에 성공하는 것은 한두 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계속 도전을 하고 있으니 성공하는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WWD 영화와 드라마의 세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송석기 영화가 아무래도 호흡이 길고 미장센을 중요시하다 보니 그것을 표현하는 공간을 만드는 공도 많이 들어갑니다. 보통 드라마 세트장을 만드는 데 18~20일 정도가 걸린다고 보면, 영화는 30일 시공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드라마는 아무래도 인물 위주로 촬영하고 배경은 훑고 지나가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WWD 영화 세트 제작을 위한 인재 육성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송석기 사실 세트장 작업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와 비슷하게 20대 때 시작했던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노령화됐다는 의미죠. 앞으로 더 젊은 인재들이 유입돼서 젊은 감각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영상은 창의적인 작업이기 때문이죠.
그나마 다행히도 이제 세트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전공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미술 전공에서 과목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몰랐죠.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가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생 때부터 세트 제작에 참여해 보고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은 바람입니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현장에 오면 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작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세트 작업을 하는 사람을 테크니컬 디렉터라고도 합니다. 세트를 감리하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죠. 그 일을 하고 싶은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기업이 그 일을 필요로 하는지를 모릅니다. 아는 형 따라와서 일을 시작하는 일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젊은 인재가 계속 유입되고 그 감각으로 세트 작업을 하는 게 지금 남아미술센터의 가장 큰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TERVIEW CHOI KWANG
PHOTO COURTESY OF NAMA ART CENTER
출처 : 더블유더블유디코리아(http://www.wwdkorea.com)